일상/아무말

계륵

노씨 2024. 6. 14. 00:26

 쓸 곳은 없는데 버리긴 아까운, 그런 애매한 입지의 것을 우리는 계륵이라 칭한다. 그것의 가치와 내가 마주한 상황이 합치되지 않고, 그렇기에 손에서 놓아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내 테두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가질 만큼 가졌는데도 꼭 쥔 손을 놓을 수 없다.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에 단 한 톨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인간의 이기심과 어린 마음에서 계륵은 피고 자란다.
 
 요즈음, 바닥만 바라본 채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계륵이 유행인 것 같다. 지갑 속만 해도 자주 가지 않는 동네 카페의 스탬프 쿠폰이나, 어느 술자리에서 만난 행인의 명함, 그리고 흔하디 흔한 누군가의 증명사진 같은 쓸모없는 것들을 우리는 버리지 못해 품는다. 지갑이 얇아지는 게 싫다는 핑계 삼아 버리지 않는다. 아무리 품어도 새끼는 태어나지 않는데도 하염없이 열이 나도록 품는다.
 
 계륵은 좋을 게다. 분명 버려질 것이라 예상한 본인의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으니. 굽은 허리로 본인을 내려다보는 인간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졸이며,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마음의 양식 삼아 버텨나갈 것이다. 서랍에 자리잡은 오래된 인형은, 필통 속 닳아 고장 나 버린 볼펜은, 옷장 속 이젠 맞지 않는 헌 옷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남는다.
 
 어디 물건만인가? 가까이 두긴 거북하고, 떼어놓긴 아쉬운 이들이 있다. 분명 만나면 즐거운데도, 더 나아간 관계는 바라고 싶지 않은, 그냥 그 정도의 거리로 만족감을 주는 사람. 남이 빼앗아가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간섭당하며 갖고 싶지는 않은 사람. 누군가에게 그들은 계륵이다. 그 어떤 짓을 하든, 그저 한낱 계륵이다. 뼈에 붙은 살점일 뿐, 결코 보물은 될 수 없다.
 
 그들은 어떨까. 상대방의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관계 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음에 감사할까. 아님 본인의 입장을 인식했음에도 현실을 부정한 채 더 아양을 떨까. 그것도 아니면 처절한 무력감에 질식하고 마는 건 아닐까.

  결국 그들의 공통점은 물건 수준의 낮은 자존감에 묶여,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 포기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그저 주인에게 충실한 반려동물처럼 현관문을 앞에 두고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울고 울며, 벅벅 문을 긁는다. 그 누구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현관등이 깜빡인다. 오늘도 오도카니, 열리지 않을 문을. 병신같이, 미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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