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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과 17일에 걸쳐

한 손으로 타자를 치는 건 썩 재밌는 일이다. 작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누르며 공부하던 옛날 생각도 나고. 그때는 분명 강아지를 키웠었다. 이름은 똘똘이. 작은 집 안을 뽈뽈뽈 돌아다니며 애교를 부렸던 그것의 기억은 뇌내, 아직 남아있다. 왼쪽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곧 나아진다고 하지만,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닌 듯한 이질적인 감각. 숨이 막히고 가래가 끓어오르면 나는 그것을 뱉어낸다. 채워지면 게워내고, 다시 채워지면 게워내고. 가끔 스스로가 어떤 기계 장치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입력에 맞는 출력만을 내뱉는 단순한 태엽 인형 같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남보다는 나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미래. 나는 누구고..

일상/아무말 2026.09.17

호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호프를 보고 왔다. 해당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을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평론가가 조롱을 당했다는 것을 듣고, 대체 어떤 영화길래 다들 이리 공격적일까 궁금증에 더위 속 외출을 했다. 사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스타일은 좋아하지만, '곡성' 만큼은 좀 맘에 들지 않았다. 두 번, 세 번을 봐도 쉬이 의미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리뷰어들의 분석 영상이나 글을 꼼꼼히 봐도, '아 이게 그래서였구나.' 보다는, '좀 너무 간 거 아닌가.' 싶었다. 내 식견이 얕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좀 오만하다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나 정도면 그래도 영화 잘 보는 편인데... 아무튼, 그런 경험을 안고 호프를 보기 위해 동대문 CGV 4관 구석 자리에 앉았다. 항상 중앙보다 왼..

영화 2026.08.04

죽고난 이후

정말 정말 조그마했을 때, 그러니까 단칸방에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그 시절에, 나는 부모님 사이에 둘러싸여 잠을 청하는 동안 내가 죽고 난 이후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자기 전 눈을 감으면 보이는 깜깜함이, 그것을 상기시켰을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부모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한 건 초등생이 된 이후이기에, 그 당시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공간도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눈을 끔뻑거리며 그저,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생각했다. 오늘 먹다 남긴 간식도, 나를 반기는 부모님도, 눈싸움을 하던 친구들도 없는 곳에 나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그런 세상을. 그러다 부모님이 미처 끄지 못한 티브이가 새벽을 알리며 치지직 거릴 때면, 나는 무서워 와락 엄마에게 안겨..

일상/아무말 2025.12.21

첫눈

습관처럼 코노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눈송이에 불과한데도 아이들, 어르신들 할 것 없이 거리에 나와 이야기하며 환히 웃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그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알 듯도 했다. 지금보다 한참 조그마했을 때는 눈이 그렇게나 좋았는데, 위로나 옆으로나 많이 커진 지금에 와서도 나는 눈이 참 좋다. 마구마구 입에 담고 싶고, 쌓인 눈에 뛰어들어 휘적대며 흔적을 남기고 싶다. 어차피 치울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는 말은 너무 안하무인 태도인 걸까. 자꾸 말해 버릇해야 말재주로 사람을 기쁘게 만들 수 있듯이, 글도 써 버릇 해야 머리 안에서 좋은 문장이 생각날 테다. 그러니 힘겹게 들어 올린 자판 위 손가락이 맘처럼 ..

일상/아무말 2025.12.04

들려줄 이야기

지는 해가 좋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 밝음을 거두어, 작은 것들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게 마음에 든다. 해는 커다란 돌멩이에 불과했던 달에게 새하얀 옷을 빌려주고, 멀리서부터 달려온 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채 남겨둔다. 그렇게, 배려로 세상은 어두워진다. 이젠 작은 것들의 시간이다. 서로 더 밝게 빛나기 위해 그들은 경쟁하며 타오른다. 타닥타닥하고 빛나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저마다의 색을 지닌 빛이 마침내 지상에 도래하고 나면 따닥따닥, 점묘화는 완성된다. 우리는 운 좋게도 우연히 감상할 뿐이다. 작은 것들이 고대해 온 꿈의 무대를. 그들의 넘치는 자신감을. 다른 곳에서 시작된 빛들은 우리네 세상에서 서로를 닮아간다. 이카루스의 모험담이 말해주듯, 태양은 인간사..

일상/아무말 2025.06.03

마음

마음이 터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는 표현은 로맨틱하지만 이기적이다. 나의 마음은 세상 홀로 존재하는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자리 잡은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 안에서 연거푸 되새김질을 거쳐 과할 정도로 정당화되지만, 그 표출로 인해 영향받는 세상은 나의 밖에 있다.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신경 쓰지 않고 나만 생각해서 하는 행동은 좋아야 용기고, 대개 치기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처럼 부풀고 커지는 게 이 세상 또 어디 있을까. 연인들이 서로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다분히 헛소리로 치부할 만한 건 아닐 게다. 특히 사랑과 미움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힘이 강한데, 이는 보통 다른 이를 향해 소비된다는 점에서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다른..

일상/아무말 2024.12.28

오목

요즘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목을 둔다. 핸드폰으로 할 수 있어 접근성도 좋지만, 오목은 게임이라고 부르기에 조금 정적이지 않나 하는 어린 생각에, 더 마음 편하게 Play 버튼을 누르는 것 같다. 등급은 6급으로 결코 높지 않다. 승률이 50%에 다다르면 당신도 자연스레 6급 한 켠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신기한 건 이 앱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인지 기억나는 이름들을 다시 마주할 때가 있다는 거다. 이는 평소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승기가 내 쪽으로 기울게 되면 할 수 있는 감정표현을 아끼지 않기에, 방금 골려준 사람을 곧바로 다시 만나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곤 한다. 그러면 나는 하던 일도 멈추고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서 승부에 임한다. 지면 겪게 될 결과를 ..

2년

시간은 기억을 거르는 체와 같아서 우리가 지난날에 잠식되지 않도록 멈추지 않고 흐른다. 하나둘씩 시간 위에 밭쳐진 기억들은, 흘러가는 시간에 이리저리 치여 서서히 마모되고 쪼개진다. 시간의 틈을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몸집이 줄어들면 그것은 결국 저 편으로 낙하하게 되는데, 이것이 단편적인 기억들이 우리의 뇌리에 순간만 자리하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으면 떨어지는 건 기억이 아닌 우리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바스라지는 건 아니다. 걔 중에는 단단하고 견고하여 궂은 시간의 풍화에도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산산조각나고마는 기억들과 달리, 그것은 오히려 연마를 거쳐 고고히 그 빛을 발한다. 그러한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 시간 위에 모..

일상/아무말 2024.11.21

밤

밤은 고독한 나만의 시간이다. 하루동안의 근심이 쌓이다 무너지는 때이고, 아직 오지않은 걱정에 괜스레 침울해질 침묵의 때다. 함께할 때에는 신기하게도 볼 수 없었던 불안과 걱정들이, 작은 방 안의 세상에 홀로 남으면 내 시야에 불쑥 떠오른다. 겁이, 겁이 너무 난다. 마음을 다잡고 검은 것들을 치우려고 해봐도, 그것들은 끊임없이 나를 조롱하고 멸시한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저 작은 아이일 뿐이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 공허한 소리는, 이내 방 안에 가득 차오른다. 나만이 들을 수 있는 거센 고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기쁠 때나 힘들 때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데, 나는 기쁠 때보다도 힘들 때 더 그렇다.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노라면, 누군가 내 ..

일상/아무말 2024.11.02

안녕

간단한 인사조차 할 수 없는 나는 안녕할 자격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를 이용하고, 시샘하고, 미워하는 나란 존재는 어른이라는 이상의 대척점에 서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보다, 슬프게 만드는데 더 소질이 있는, 흉한 나란 존재의 소멸이 가져올 무게에 대해 역시 이미 알고 있다. 시험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에둘러 멀리 돌아왔다. 시험 중에 타종이 여러 번 울렸다든가, 시험 장소가 상정하지 않았던 중학교로 바뀌어 책상이 작았다든가 하는 사소한 이유를 포함하여 수많은 변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모든 게 소용없었다. 비록 주어진 우연과 운명을 뒤바꿀 능력은 없었지만,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 정도는 내 손을 통해 선택할 수 있었다. ..

일상/아무말 202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