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을 쉽게 주는’ 이라는 수식어는 나를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나는 ‘정을 쉽게 많이 주는’ 사람이다. 어느 누구든 간에 나에게 다가와준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대할 자신이 있고, 실제로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사람이 좋다. 아니,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해야 하나. 그렇기 때문에 (초, 중, 고) 의 학기 초 때 나는 가장 다가가기 쉬운 친구들 중 하나였으며, 반장과 같은 여러 직책을 도맡아 했다. 지금 대학생이 된 이후로도 아이들의 추천으로 과대표가 된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 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와 두루두루 친해지고, 감투를 쓰게 될 때마다 항상 내가 실수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모두를 안고 가자’라는 이상주의적 마인드를 가슴 속 깊이, 그것도 아주 깊숙이 품는 것이다.
처음엔 괜찮다. 학기 초란 본래, 어울리는 분위기이고,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 보다는 좋아하는 게 더 쉬울 때니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주위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나는 그들 모두를 챙기려고 강아지마냥 열심히 낑낑댄다. 모두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공동체 안에서는 충돌이 생긴다. 그 충돌은 당사자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당사자들 모두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그 균열을 이어놓는 징검다리 위에서 갈등한다. 남들이 방향을 정하고 양쪽 끝으로 걸어 나갈 때, 나는 그 징검다리 위에서, 균열을 채우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그 균열이 완전히 채워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징검다리가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그렇게 서성이다, 밑으로 떨어진다.
그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었기에 했던 행동이었지만, 남들의 눈에는, 아니 최소한 당사자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나는 적이 되었다. 모두의 편이 되었기에 나는 모두의 적이 되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진짜 ‘나’가 되어 공동체를 배회하는 유령이 돼 버리고 만다.
그런 일을 겪어도 매 학기 초마다 똑같은 생각을 품는 내가 참 바보 같다. 배회하는 거짓된 이야기를 바로잡지 않는 내가 참 바보 같다. 그런 일이 트라우마가 될 때까지 혼자 아등바등 대는 내가 참 바보 같다. 나는 왜 그런 걸까. 왜 나를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 애쓰고, 떠나는 나를 붙잡지 않는 사람에게 실망하는 걸까. 나는 사람이 좋다. 아니,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어째서 내 뒤통수는 얼얼한 걸까.
라는 글을 1학년 때 썼다. 참 시니컬하고 비관적이다. 저 때 상황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에서 절망을 겪었었고, 애정이라는 감정이 실망으로 다가왔던 때였다. 나 스스로 내가 싫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으로 인해 다시 저 밑으로 침체되어가는 나 자신을 붙잡을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나. 비극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한다. 이전보다 덜 겉으로 드러날 뿐, 내 속은 점점 그 감정 그 자체의 모습으로 변모해간다. 예전에 보았던 인사이드아웃의 영화에서 그러하듯, 내 마음속의 감정들은 꽤나 주체성이 강한 모양이다. 슬플 땐 무슨 일이 있다 싶을 정도로 말이 없어지고, 화가 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너무나 부끄러울 땐 귀가 빨개지며, 행복할 땐 입이 귀에 걸린다.
사실 나는 이런 나 자신이 싫다. 나는 항상 어른이 되고 싶다. 내 마음 속 그려진 어른의 형상은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하루에도 수천번 변하는 그 감정으로 인해 내 행동과 생각이 좌지우지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1학년 때에도 그랬고, 여전히 그렇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지표일테다.
사람은 '우연'으로 만나 '인연'이 된다. 인연은 다시 우연으로 돌아갈 수도, 혹은 그 인연이 더 깊어져 서로가 서로의 '필연'이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의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 나는 모든 인연이 필연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이상적인 생각이다. 인연이 우연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한낱 자그마한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이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인연을 붙잡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이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요, 지금 나에게 다가온 우연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은 이기심 때문이다. 세상은 이성으로만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누군가가 이득을 보지 않겠는가.
뒤통수가 얼얼하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고통이 익숙해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