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22년, 전역을 하고 난 직후, 일기를 쓰기 위해 이쁘장한 다이어리를 장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공부, 진로 탐색, 운동 등등 여러 가지를 손에 넣기 위해 아등바등할 때인지라 일기를 쓴다는 게 특히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방학 숙제로써의 일기만을 접해본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물론 사회에서 격리된 덕에 피해 갈 수 있었던 코로나를 마주하는 바람에, 기숙사에 일기를 두고 온 채 대전으로 격리된 이후에는 자연스레 일기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백일장 대회에 나갔는데, 무사히 3등에 안착하여 상금을 받았다. (내가 쓴 글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여기에 숨겨진 사실은 자유 주제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일기 내용을 그대로 낸 것 정도? 그런 점에서 일기에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 지를 설명할 수 있겠다. 결국 아무도 보여주지 않을 거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썼나도 싶다.
지금에 와서 일기를 펼쳐보며 드는 생각은 '참 고민도 많았구나'하는 자조적인 한숨이다.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2년 사이에 달라진 나밖의 것들과 나. 무엇보다 사람의 부재에 힘들어했던 나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혼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 순간에는 참말로 막막했다. 그럼에도 다른 이에게 선뜻 다가가지 않았던 건, 이해타산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요, 다른 이에게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며, 빈자리에는 스스로가 자초한 눈물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대체제로 삼기엔 미안했고, 무엇보다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있나. 그렇게 터벅터벅 생활하며 나는 잠시동안 일기를 썼다.
앞으로도 일기를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치 녹음 속 내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글씨 속 나의 감정들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조금 기분이 나쁘다. 또한 아이 같은 내 모습에 실망감도 든다. 쉽게 감정에 휩싸이고 마는 내가, 욕망을 사랑이라 둔갑시키는 내가, 나는 여전히 싫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