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 2024. 5. 2. 01:43

 인간은 하늘 위 별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별들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 동안만 빛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그 영원함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 위 별을 이어 별자리가 되었고, 별자리들이 모여 신화가 되었다. 그렇기에 신들의 모습은 별과 사뭇 닮아있다. 영원하고, 엄숙하며, 아름답다. 그리고 누구도 그의 부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날이 흐려 구름이 끼더라도 별은 그 자리에 서 있다. 단지 잠깐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럴 때가 있다. 지치고 힘들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몸이 아프고 서러워 이불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때. 감정이 북받쳐올라 다만 소리치고 싶을 때. 공허함에 사로잡혀 본인마저 잃어버릴 것만 같을 때. 악연 혹은 인연을 잊지 못할 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파묻혀 질식할 것만 같을 때. 타인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스스로가 화가 날 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발생한 일에 죄책감을 느낄 때. 노력하지 않고 결과를 바랐다는 우둔함에 자책할 때.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때. 할 수 있었던 선택의 부재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를 괴로워할 때. 무력감에 몸서리칠 때. 과거가 부끄러울 때. 미래가 두려울 때. 끝이라고 생각이 들 때. 삶의 주체이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
 
 감정적이고 나약하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본연 인간은 감정에 휩쓸리고 고통에 몸서리친다. 삶의 진리를 깨달은 일부 철학자들만이 이성을 찾는다. 진리와 이성을 동일시하고, 이를 전파하며 계몽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외눈박이 마을에서 두눈박이가 무슨 소용인가. 감정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반대의 경우 역시다. 소리 없는 계몽이 무슨 소용인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계몽이라 이름 붙여봤자,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갈대다. 감정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로, 저리로 흔들리는 갈대다. 해와 별과 달을 바라보며 빛을 좇은 것은, 갈대의 천성 때문이다.
 
 하지만 갈대는 결코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바람의 존재를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휘청거림은 유연함으로 번지고, 유연함은 삶을 유지케 해 준다. 또한 바람은, 맞바람으로 상쇄된다. 그렇기에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바람 중 일부에 주목하자. 그러면 어느새 감정은 순풍이 되어, 시원한 가을향만 맡아낼 수 있을 게다.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별은 질책하지 않는다. 감정의 소용돌이 바깥에서 우리를 지긋이 바라볼 뿐이다. 하나의 별을 고르고, 이야기하자.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비추어지는 별빛에 하소연하자. 바람에 눈물짓지 않기를 '바람'으로.